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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먹방’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3.09.04 10:03 수정 2023.09.04 12:10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먹방’과 관련된 미디어콘텐츠가 최근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어느 한 군데는 ‘먹방’이 진행되고 있어, 이제는 아예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된 듯하다.
 
‘먹방’이란 출연자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주로 보여 주는 영상이나 방송 프로그램이다. 글자 그대로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여기에 또 다른 낱말을 붙여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먹방 투어’라고 하면, 주로 맛집을 돌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데 목적을 두고 하는 여행 방송을 말하고, ‘먹방 레전드(legend)’라는 것은 전설로 기억될 만큼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먹방계(界)’는, 방송 등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거나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의 활동 분야를 의미하며, ‘먹방하다’는 표현은 주로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거나 그런 영상을 찍는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먹방’이라는 낱말이 일상생활에 자연스레 쓰이고는 있지만 사실 우리 고유의 언어는 아니다. 이토록 유행하니까 활용되고 있을 뿐일 것이라는 짐작으로 좀 더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먹물을 뿌린 듯 캄캄한 방이라는 뜻으로, 불을 켜지 않아 몹시 어두운 방을 이르는 말”로만 설명되고 있다. ‘먹방’에 대한 이외의 다른 내용은 없었다. 

요즘의 미디어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먹방’이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전부가 ‘먹는 모습을 찍은 방송’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본래의 의미와는 차이가 커 보인다.
 
그렇다고 ‘먹방’을 ‘캄캄한 방’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오히려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려는 세태가, 낱말의 창조를 통해 그들만의 간결한 소통을 장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에는 ‘소확행’의 한 방법으로 먹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문화가 대세를 이루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먹방’이 처음 등장했을 때, 필자는 ‘저런 것은 한순간 반짝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맹렬한 기세로 여기저기서 새로운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면서 흐름을 주도했다. 흔히들 말하는 맛집의 긴 웨이팅을 소개하면, 그다음부터는 그 웨이팅이 더 길어지기도 하고, 가게마다 자기만의 비법을 소개하면서 조리과정이나 식재료의 일부만은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식으로 그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정인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먹방’은 어떤 때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하게 한다. 저런 조그만 체구에 그 많은 양을 먹어치우는 모습은 불가능 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는 손쉬운 방법이 될지 모르지만, 자칫 출연자의 건강은 물론 이를 따라하는 시청자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어쨌든 ‘먹방’이 한때의 유행을 넘어 어엿한 주류 문화가 되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더구나‘먹방’을 우리나라의 음운을 따라 ‘mukbang’으로 전 세계에서 쓰고 있고, ‘무언가를 먹는 방송’으로 사실상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으니 ‘먹방’도 소위 K-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발 더 나아가 ‘먹방’의 종류도 ‘도전형 먹방’, ‘미식형 먹방’, ‘소통형 먹방’등으로 세분하여, 문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진화하는 중이라고 하니, 합리적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시청수요를 반영한 빠른 트렌드 변화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변화에는 우리 조상의 뿌리 깊은 식문화도 한 몫 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많다. 우리 선조들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놀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한다. 그래서 ‘먹방’을 우리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사회적 배경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먹방’의 유행은 1인 가구가 늘고 ‘혼밥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는 사회적 배경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까닭에는 누군가와 함께 먹는 기분과 거기서 오는 위로와 공감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먹방’을 보다가 문득 몇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양이 특히 많은 음식, 자극적인 음식에 도전하는 출연자 때문이다. 그냥 많이 먹는 것에만 중점이 맞춰지다보니 거기에 부수되는 부작용을 외면하지는 않은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필자는 자극적이거나 도전적인 ‘먹방’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먹방’을 권하고 싶다.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대한 배경이나 사연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에 대한 맛 평가만 할 게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청자와 음식을 매개체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음식의 역사적 배경이나 그 음식과 관련된 일화 소개 등이 들어있는 따뜻한 ‘먹방’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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