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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현대적 의미의 ‘컴맹’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9.30 20:13 수정 2024.09.30 20:13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어느 날 어떤 앱을 찾느라 필자의 스마트폰을 열어 보니 앱의 개수가 무려 70여 개나 되어 깜짝 놀랐다. 그나마 필자는 스마트폰으로 몇 가지 일을 하는 터라 그 활용에 익숙한 편이지만, 많은 사람은 아마 자신의 폰에 들어 있는 앱의 용도조차 모르는 것도 꽤 될 것으로 짐작된다. 나의 어떤 지인은 자주 활용하는 너덧 개 앱을 제외하면, 처음부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용도인지 전혀 감 잡을 수 없는 것도 여럿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 처음 스마트폰을 구매했을 때, 가게 주인이 친절하게 깔아준 것일 거라고 한다. 그는 단 하루도 폰 없이 생활한 적이 없는데, 거기에 들어 있는 많은 앱의 사용법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스스로 ‘컴맹’이라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도 하였다.

‘컴맹’은 ‘문맹'이라는 의미에서 따온 단어로 오래전부터 일상생활 용어로 정착된 듯하다. ‘컴’은 컴퓨터이고, ‘맹’은 한자 ‘盲’으로, 눈이 멀었다는 의미니까, 아마 컴퓨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통틀어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컴맹’이란 컴퓨터에 관해서는 눈이 먼 소경과 같다는 뜻일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문맹률은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래서 1948년 선거에서 입후보자의 이름을 유권자가 정확히 읽어낼 수 없어서 ‘작대기’ 표시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문맹률이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늦게나마 마을 회관 등에서 놀이를 겸한 한글 공부를 하고, 여가 선용 돌봄 프로그램을 적용한 지역 활성화 노력 덕분이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측면의 ‘문맹’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 능력 부족 때문이다. 말하자면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 사라지면서, 그 모습을 바꾸어 ‘컴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다. 앱 기능 하나로 은행에 직접 가지 않고 송금이나 돈을 찾을 수 있고, 병원에 가지 않고 아픈 데를 진료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이러한 기능들이 절실히 필요한 당사자인 어르신들은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 현실인듯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손주한테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놓여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컴맹’이란 단순히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는 측면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몰라서 생기는 새로운 모습의 ‘문맹’이라는 주장이 일리 있어 보인다. 그래서 현재 우리 이웃의 어르신이 겪고 있는 스마트폰 ‘컴맹’이, 과거 우리나라의 ‘문맹’ 못지않은 소외감과 서러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컴맹’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일 때의 개념과 현재의 ‘컴맹’의 개념은 달라졌다. 과거에는 그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을 뜻했으나, 컴퓨터가 필수품으로 바뀐 현재는 그 뜻이 꽤 넓어졌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고 하더라도 그 관리 능력이 부재한 사람까지도 ‘컴맹’의 범위에 넣고 있다. 게다가 컴퓨터를 오작동시키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가리키는 냉소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젊은 세대에도 컴맹이 넘쳐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많다. 젊은 세대이면서 ‘컴맹’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컴퓨터가 보편화되다 보니 업데이트 등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포맷이나 OS 재설치를 자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정화되어 깊게 배울 필요가 없게 되어, 사실 꼭 필요한 원리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다. 마치 과거에는 자동차 운전을 배우면 간단한 정비 등도 같이 익힐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요즘은 보험사 등에서 자동차 정비를 굳이 알지 못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시스템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운전면허증을 따서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해도, 굳이 그 구조나 정비 방법 등에 대해서 몰라도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컴퓨터 화면 캡처 기능을 다룰 줄 몰라서 화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다시 컴퓨터로 전송해서 저장하는 젊은 층이 흔하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불편하지 않거나 바른 사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컴맹’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스마트폰의 앱 활용도 그런 차원이 아닐까? 평소 사용하는 특정한 기능으로만 집중적으로 쓰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다른 기능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런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그 다른 기능을 활용해야 할 상황이 되면 막혀 버리면서, 새로운 ‘문맹’인 ‘컴맹’의 반열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삶에 차지하는 스마트폰의 중요성과 편리성에 비추어 적어도 그 사용법에 대해서는 불편을 겪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점점 더 고급화, 정교화 되고 있는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미래지향적 자세를 가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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