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금고와 각종협동조합 금리가 어느 곳이 더 높은가를 알기 위해 인터넷에 물어보려고 하니 옆에 있던 친구가 “AI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뭐하려고 힘들게 찾니?”라고 얘기 한다. 사실 질문 요지를 대충 말해도 AI가 알아서 답변 해 준다. 그러니 생각하는 뇌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너무나 똑똑해서 내가 주문한 이상의 답변을 만들어 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제미나이에게 “나는 가난했다. 공무원직을 00했다” 4-5 줄 주문을 넣어 “트롯 형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가난한 시절 보리개떡, 주경야독, 시민을 위해 봉사 등” 주문에도 없는 내용을 잘 만들어 준다. 깜짝 놀랄 정도의 대답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편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다. 이렇게 머리를 안 쓰면 사고가 퇴행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 고민을 하는 중에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의 “AI 100% 활용의 전제조건인, 사람 본연의 자연지능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일상생활에서의 그 강화 방안”이란 글이 있어 안심이 되기도 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인간의 지적 활동을 도와주는 기술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도약을 목격했다. 복잡한 질문에도 몇 초 만에 정확한 답이 돌아오고, 방대한 문헌이 즉시 요약된다. 뇌 과학이 밝혀 온 인간 뇌의 작동 원리는 이런 시대일수록 자연지능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자연지능은 인공지능의 반대말이 아니고, 몸을 가진 존재만이 발휘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또 다른 지능의 이름이다.
자연지능의 첫 번째 조건은 일화(逸話)성이다. 인간의 기억, 특히 일화기억은 자신의 몸이 어떤 순간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의 묶음이다. 뇌의 해마는 매 순간 우리 몸이 놓인 맥락을 하나의 사건으로 엮어, 우리가 자신과 타인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이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과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자신의 일화를 갖지 못한 인공지능은, 아무리 많은 문장을 흡수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갖지 못한다.
두 번째 조건은 상반되는 이중 시점의 조화다. 인간의 뇌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과 나의 시각으로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동시에 유지한다. 우리는 도시를 조감도로 이해하면서도, 언제나 그 도시의 한 골목에 발을 딛고 서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다가도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다시 그려 보는 이 유연한 시점의 이동은, 몸으로 세상을 여러 방향에서 겪어 본 존재만 가능하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지도를 갖고 있어도, 그 안에 원점 삼을 몸이 없다는 사실이 AI의 유연성을 근본적으로 제한한다.
세 번째 조건은 맥락적 유추다. 인간은 단 한 번의 경험에서 원리를 뽑아내고, 겉은 다르지만 속은 닮은 새로운 상황에 그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이 능력 덕분에 아이는 한 번의 데임으로 뜨거운 물체를 조심하고, 연구자는 한 번의 실패로 다른 실험에서도 비슷한 함정을 피한다. 이 유추의 힘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와 즉각성에서 나온다. 여러 감각 채널로 생긴 하나의 사건은, 이후 어떤 조각이 자극되어도 전체가 함께 되살아나는 촘촘한 매듭이 된다.
네 번째 조건은 가소성이다. 인간의 뇌는 스스로의 하드웨어를 갱신할 수 있는 특별한 구조를 기반으로 지능을 발휘한다. 해마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새 뉴런이 계속 태어나며, 그 속도는 우리가 얼마나 몸을 움직이고 다양한 환경에 자신을 노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AI가 외부에서 계산 자원을 더 부어 성장한다면, 인간의 뇌는 자기 몸을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성장한다. 이는 어떤 인공 시스템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방식의 성장이다.
이 네 가지 조건, 즉 일화성, 이중 시점, 맥락적 유추, 가소성은 하나의 공통된 뿌리에서 자라난 네 갈래 가지다. 그 뿌리는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지능은 이 몸의 조건 위에서만 성립하는 지능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AI 시대에도 결코 낡지 않는다.
AI 시대에 학습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챗봇에 요약과 정리를 위탁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정작 우리에게 남는 지능의 몫은 위탁할 수 없는 일에 집중돼야 한다. 자신의 몸으로 사건을 겪는 일, 자신의 원점에서 세상을 다시 그려 보는 일, 경험을 밀도 있는 매듭으로 짓는 일, 뉴런을 움직임을 통해 갱신하는 일. 이 네 가지는 어떤 AI도 대신해 줄 수 없다. AI가 유능해질수록, 이 가치는 오히려 커진다. 인간의 지능은 여전히 세상 속으로 몸을 던져 겪고 되짚고 다시 경험하는 반복 과정을 통해 자라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AI만이 아니라, 더 나은 몸의 시간, 더 나은 겪음의 시간이다. 자연지능은 그런 시간을 통해서만 자란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AI가 지식의 정답을 순식간에 내놓는 시대일수록, 이론적 지식 너머 직접 부딪히고 깨지며 얻어낸 실천적 지혜가 생존 전략임을 강조했다. 또 AI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구하는 지식 당뇨에 빠지지 마라. 독서를 통해 깊이 사유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문제적 인재(變才)가 되라고 한다. 그는 책을 읽고 밑줄을 긋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나의 경험과 연결해 재해석해야 한다며, 읽지 않고 쓰지 않으면 사고의 외주화가 일어나며, 결국 AI 시대에 인간은 아웃(Out)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서는 사유의 시작이다: 아픔을 통찰로 바꾼다: 독서는 타인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는 최고의 도구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쌓고 이를 다시 몸으로 겪어내는 과정이 반복될 때 비로소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실천적 지혜가 탄생한다, AI가 복사할 수 없는 자신만의 킬러 콘텐츠인 경험과 깊이 있는 독서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AI가 모든 것을 잘 할수 있으면 인간은 무엇을 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해 왔는데, 두 교수의 글을 보고 나니 안심이 된다. 조물주가 창조했는지? 진화로 태어났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지만, 세상 어느 기계보다도 정교한 인간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더 많은 독서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